"신이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 한,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하다."
- 버트란드 러셀, 무신론자
우리는 누구나 삶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며 암담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면 결코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다.
삶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의 목적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여러가지 방법을 제안한 일종의 자기 지침서(self-help)와 같은 책들이 많이 있다.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주제에 접근하는 이러한 권고들 덕분에 큰 성공을 이루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성공한다는 것과 삶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은 절대 같지 않다.
우리는 대중 심리학이나 성공을 위한 동기, 또는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이 아닌 영원한 진리에 바탕을 두고 삶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삶으로 떠나는 질문> 어떻게 하면 삶이 내 것임을 주장하는 어지러운 광고들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임을 기억할 수 있을까?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하나님 인격의 본질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그대로 완벽한 사랑이시다.
부모님이 우리라는 생명체를 만들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마음속에 품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주할 곳까지 계획해놓으셨다. 다시 말해 아주 작은 부분조차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계획되어 있다는 말이다. 즉 우리 삶의 어떤 부분도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이 세상에 왜 악은 존재하는가. 왜 슬픔은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선하시다. 천사 루시퍼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님께 대항함으로써 악의 세력이 되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만들어졌으나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
착한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죄악에 빠진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결국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당신이 당한 고통 견디기 쉽지 않았겠지만
하나님 역시 당신이 마음 상했을 때 눈물 흘리셨어요.
하지만 그것을 통해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닮아가고 성장하길 원하셨죠. - 러셀 켈퍼의 詩 중..
우리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수백 가지의 상황, 가치 그리고 감정이 우리의 삶을 이끌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다섯 가지.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에 의해 끌려 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를 씹으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이끌려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이끌려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간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 따르는 유익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목적을 알면 우리의 삶은 단순해진다.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된다.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된다.
목적을 앎으로써 영생을 준비할 수 있다.
'너는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너에게 준 것들로 너는 무엇을 했느냐?'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삶의 목적은 다르다. 하나님이 최고의 가치로 두는 것은 사랑이다.
믿음 안에서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5:22)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사는 것이 존재의 끝이 아니고 그 후의 영원이라는 것이 있으며, 지금의 삶이 영생을 위한 준비 과정이란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르게 살기 시작할 것이다.
영원의 빛 가운데 살면 우리의 가치관이 변한다. 시간과 돈을 더 현명하게 쓰게 되고, 명예나 부, 또는 일의 성취감이나 쾌락보다 인간 관계와 인격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다. 또한 유행을 따르고 대중적인 가치관을 받아 들이는 것이 별 의미없는 하찮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재 이 땅에서의 삶이 우리 삶의 전부라면 착하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반드시 책임감을 가지는 의식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행동들에는 장기적으로 아무런 영향력도 없기 때문에 완벽히 자기 중심적인 삶을 누려도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 존재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죽음은 우리의 끝이 아니고 영생으로의 전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행위에는 영원한 결과가 따른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바로 그것이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삶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우리의 삶을 만든다.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모습은 자신의 삶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것, 가치관, 인간 관계, 목표, 그리고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한다.
성경에 근거한 삶의 모습 - 삶은 시험이고, 위탁받은 것이며, 임시로 맡겨진 임무다.
이 땅에서의 삶은 시험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대한 변화, 미루어진 약속,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 응답받지 못한 기도, 이유없이 받는 비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시험을 받을 것이다.
히스기야는 평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해왔지만 하나님은 그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를 홀로 두셨고, 그 기간 동안 그의 인격을 시험하시고 약점이 무엇인지 나타내심으로 더 많은 책임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단련시키셨다.
삶이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모든 시험을 통과하길 원하시고, 우리가 직면하는 시험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 이상이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이 땅에서의 삶은 위탁받은 것이다.
이 땅에서의 시간, 우리의 에너지, 지적인 능력, 기회, 관계 그리고 자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보고 관리하도록 잠시 맡기신 선물이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들을 얼마나 잘 다루었는지 평가받을 것이고, 그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이다.
지구상에서의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이 땅이 우리의 궁극적인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왜 어려움과 슬픔 그리고 거절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또한 왜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왜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는지, 왜 어떤 상황들은 불공평해 보이는지에 대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세상이 삶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풍요로운 삶은 물질적인 풍요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충실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해서 그것이 우리의 직업이나 사역의 성공을 약속하는 보증 수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장 위대한 믿음의 영웅은 번영, 성공, 그리고 이 세상의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고, 영생에서의 약속된 상급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사람들이다.
삶이 힘들어지고, 의심의 구름이 몰려오며,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고민하게 될 때 우리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삶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가치있는 일을 해야하겠지만, 어떤 일은 가치있는 것이고 또 어떤 일은 가치없는 일이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일을 왜 하느냐, 무슨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이 달라진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일은 무가치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일시적인 삶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 사랑이 넘치는 일터를 만들어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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